다들 행복하신가요?
요 근래 들어 부쩍 행복이란 단어가 낯설게만 느껴집니다.
항상 행복과 평화, 사랑 등에 많은 고민을 가지고 있던 저로써
이번 곡은 제게 아주 큰 의미를 가지고 있는 음악입니다.
난 행복해 근데 아직도 너무 힘들어
난 배부른데 자꾸 찾아가 불안속으로 일부러
사실 주변을 둘러보면 충분히 행복할 만한 일들이 많죠.
그럼에도 행복과 항상 붙어있는 불행한 일들이 훨씬 커 보이는 경우가 더 잦아요.
그렇게 우리는 행복을 놓치고 불행하다고 느끼게 되죠.
처음에는 먹고사는 문제가 고민이였고,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이 되자 꿈이 고민이었죠.
꿈을 향해 노력하고 있는 이 순간에도 저는 수많은 고민들에 휩싸여 있습니다.
대체 행복이란 건 뭘까요?
왜 사람들은 다들 행복하길 바라면서
행복해지기 위해서 뭘 해야 하는지 모르고 살아갈까요.
알면서도 쉽게 행해지지 않기도 합니다.
행복은 항상 어려운 일이었죠.
난 인정받고 싶어 난 위로받고 싶어
난 행복하고 싶어 난 사랑받고 싶어
인정과 사랑, 위로와 관심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중요합니다.
사실 이런 감정들이 살아가면서 생기는 힘든 일을 버틸 수 있는 힘이 되어주고
더 나아가서 행복에 가까워질 수 있는 키워드가 되죠.
저는 행복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체적인 행복, 심리적인 행복뿐만 아니라
성취감, 안정감 같은 감정들도 행복 중에 하나죠.
결국 행복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단어는 '만족' 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는 많은 결핍 속에서 태어나고, 결핍속에서 살아갑니다.
제가 행복에 대해서 고민하며, 최근에 가장 큰 깨달음을 얻은 건,
선택적인 결핍의 존재였습니다.
쉽게 이야기해보자면, 제가 많은 걸 가지고 있어도,
저보다 더 많은 걸 가지고 있는 사람을 보고 결핍을 느낀다면,
전 그 사람보다 더 많은 걸 가지기 전까지 불행하다는 이야기죠.
심지어 그렇게 더 많은 걸 가지고 난 이후에도
다시 생겨날 수 있는 결핍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우리는 남들과 비교하며, 행복이란 감정을 저울질하고
결핍이란 늪에 스스로를 던져 넣고는 모른 체 하며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위에 말했듯, 행복을 놓치고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거죠.
Aron과도 결핍과 불행, 만족과 행복에 대한 이야기를 그동안 자주 나눴습니다.
전 자주 스스로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편이었고, Aron은 만족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편이었죠.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Aron에게 많은 것들을 배웠습니다.
결핍 중에 몇몇은 선택이 가능한 것들이라는 것을요.
내가 지금 당장 가진 것들이 별로 없다고 해서 불행해야 할 이유가 없고,
내가 가진 것들이 많다고 해서 그게 행복해야 할 이유가 돼주지 않습니다.
내가 가진 것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판단하느냐에 따라서
행복과 불행을 선택할 수 있다는 이야기죠.
물론 전 세계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고, 개중에는 분명히
저보다 더 많은 것들을 가지고, 저보다 잘 난 사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존재한다는 이유가
제가 불행해야 할 이유가 되지는 않죠.
스스로에겐 스스로의 행복을 찾을 수 있는 권리가 있고,
그 권리는 누구도 막을 수 없습니다.
행복은 '얼마나 가졌냐'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면
더 이상 불행은 여러분을 괴롭힐 수 없게 될 겁니다.
대체로 우리가 불행을 선택하는 이유는 비슷합니다.
행복은 너무 멀어 보이고, 짧기도 하고.
행복을 느꼈던 경험이 몇 없기에 스스로에게 불행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경우였죠.
그렇게 우리는 불행을 직접 선택하곤 했습니다.
모든 건 시야와 생각의 차이입니다.
당장 한 번에 바꾸는 건 어려울지 몰라도, 지금 가진 것들에 감사하고
어떻게든 행복하려고 노력한다면 어떤 일들에 가로막 히더라도
분명 마지막엔 행복할 수 있을 거예요.
꽃을 보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어디에나 꽃이 피어있다.
앙리 마티스의 문장입니다.
행복은 스스로 찾으려고 하는 자에게 옵니다.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그날까지 전 기도하겠습니다.
이번 곡은 오반의 행복이었습니다.
긴 글 읽어주신 여러분께 모두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였길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