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 자기계발 > 인간관계 |
이름 | 설득언어 |
요약 | 상대의 마음을 사로잡는 프레임 대화법 |
저자 | 박만규 |
출판 | 베가북스 |
내 생각은 자유로울까?
하지만 이런 일반적인 견해와 달리 생각 또한 방해 요소들이 많이 작용한다. 생각하기 전에 이미 머리를 지배하고 있는 많은 요소들에 의해 점령당해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도 모르게 생각을 제어하는 사고의 틀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종교와 개인적 신념, 그리고 이데올로기라고 불리는 집단적 신념, 미신, 징크스, 고정관념, 선입견, 편견, 특정 대상에 대해 형성된 이미지, 어릴 적 겪었던 충격적인 사건에 의해 형성된 트라우마 등이 그 선행요소들이다. 여기에 유전적 요인과 성장배경 등에 의해 형성된 개인의 성격도 한몫을 한다. 이렇게 우리의 머릿속은 이미 많은 선입견들로 오염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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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생각 구조가 자유롭다 까지는 아니여도 "객관적인가?"라고 물어본다면 너무 아무렇지 않게 그렇다고 했을 것이다. 다양한 시각에서 고려를 한다고 나름 자부했기 때문인데, 위의 저자의 말을 통해서 대답을 선뜻 할 수 없게 되었다. 어느 것이 더 옭고 그른 것이 중요한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내가 접하고 살아온 환경으로 나의 프레임이 구축 되어왔고, 내가 접한 정보와 상상에도 한계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고의 틀, 이중적인 프레임
이처럼 어떤 대상이나 일에 대해 취하는 사람의 태도에는 신념과 감정과 행동이 복합되어 있다. 사고의 선행요소들이 특정한 관점을 미리 설정해 놓기 때문에 우리 머릿속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관점이 안내하는 사고의 틀이 만들어지게 된다. 이것이 이후 일어나는 사고를 일정한 방향으로 유도하고 또 제어하게 된다. 어떤 대상에 대해 사고할 때 대상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형성되는 무의식적 사고의 틀을 여기에서는 프레임이라 부르고자 한다. 프레임은 이중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프레임은 어떤 대상이나 현상을 이해하고 사고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이라 할 수 있다. 다른 생각이나 상상을 하지 못하도록 차단하거나 방해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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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뇌의 한계보다 무수히 더 많은 정보 속에 살고 있다. 프레임이 있기 때문에 더 많은 정보를 보관할 수 있기 때문에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다른 생각과 상상을 방해하는 것을 막을 수 있을까?"를 고민해봐야 할텐데,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스마트폰의 카메라 필터 앱과 같이 프레임을 전환할 수 있으면 해소되지 않을까? 우리는 하나의 프레임에 몰두하는 것에만 익숙했지만 프레임을 통해 생각한다는 것을 인지한다면 몰두에서 벗어나는 방법도 익숙해질거라고 생각한다.
언어 내 위치와 관련된 프레임
서로 대립하는 두 가지 개념을 병기할 때 이 경우 모든 언어에서 긍정적 가치를 앞에, 부정적 가치를 뒤에 놓는 것이 보편적이다. 즉 ‘긍정적 가치 우위’의 프레임을 쓰는 것이다. 한편 대립된 두 대상을 포괄하는 상위 개념을 만들 때는 두 가지 방법을 취할 수 있다. 첫째는 새로운 어휘를 이용하는 것. 둘째는 두 가지 대상 가운데 하나를 택하여 대표시키는 방식, 즉 두 대상 중 한쪽이 다른 한쪽까지 포함하는 상위어로 쓰는 방식이다. 이를 ‘자동상위관계’라고 한다. 대개 긍정적 가치를 나타내는 개념어를 택하여 대표시킨다. 대립되는 두 가지 개념 중 한쪽이 강자이고 다른 한쪽이 약자일 때는 대개 강자를 앞에, 약자를 뒤에 놓고 있다. 즉 ‘강자 우위 프레임’을 쓰는 것이다. 앞에서 살펴본 단어 차원이 아니라 이렇게 문장이나 담화의 차원에서는 뒤에 말하는 것이 결론으로 간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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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임 이론에 뒷받침을 하는 많은 언어적 요소의 예시들을 저자가 설명하는데 꽤나 신기하다. 지금까지 생각해보지 못한 너무 당연한 것들에도 다 이유가 있는 것이 흥미롭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어느 한 문화권에서만 해당 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같은 맥락으로 서구권도 같은 일관성을 띄고 있었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디테일을 담은채 상대에게 전달하는 것이 언어이기 때문에 알아둔다면 상대의 말을 들을 때도 요지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사고는 소리없는 언어
개념은 결국 언어로 표현되기 때문이다. 물론 언어로 표현되지 않은 채 존재하는 개념들도 있기는 하지만 그것들은 지속되기 어렵다. 사고의 기본 단위가 개념인데 개념이 언어로 되어 있다면 결국 사고는 언어로 되어 있다는 결론으로 향한다. 우리는 언어가 개념화해 놓은 대로 사물들을 보고 세상을 보는 것이다. 즉 단어가 먼저 존재하고 그 단어가 개념화한 대로 사물들을 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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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신기하다. 개념은 언어로 표현되므로 언어로 사고한다는 결론을 도출했는데 많은 궁금증을 자아낸다. 많은 단어와 어휘를 알면 사고의 범위가 넓어지고 유연해지는 것인가? 평소 부정적인 표현을 자주 하는 사람은 부정적으로 사고를 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 사람이 긍정적인 표현을 자주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긍정적인 사고를 하게 되는 것인가? 그리고 단어가 떠오르지는 않지만 개념만 떠오르는 거시기(?)한 상황은 어떻게 설명되는 것인가? 이런 부분에서 간단하게 설명이 마무리되어 아쉽다고 생각이 든다.
상상을 방해하는 고정관념
기억이란 과거의 경험을 인출하는 행위다. 반면에 상상이란 경험하지 않은 것을 사고하는 행위다 기억과 상상 중에 어느 것이 더 어려울까? 당연히 상상이 더 어렵다. 우선 상상이란 새로운 조합인데 많이 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화를 통해 상대를 설득해야 할 때도 창의적 사고가 필요하다.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면 상대의 마음을 움직일 새로운 동력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어려움이 더해진다. 나 혼자의 생각만이 아니라 상대방의 생각과 감정, 욕망까지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화에서는 두 사람의 욕망과 의지가 충돌한다. 상대도 나와 똑같이 자신의 생각을 나에게 불어넣으려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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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에 있어 과한 프레임은 새로운 것을 배우지 못하게 하고, 관계에 있어 과한 프레임은 사람을 잃게 하는 것 같다. 만나는 그 순간 순간 다른 것임을 우리는 인지하지 못하지 않던가? 평소와 행동이 달라지면 "이 사람이 달라졌구나!"가 아니라 "왜 안 하던 행동을 해?"라고 말하는게 사람에 맞춰 프레임을 만든 것이 아니라 프레임에 사람을 맞추려는 좋은 예시가 될 것 같다.
어휘의 성향이 관점을 결정한다
관점은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에 의해 알게 모르게 도입된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 가운데 어떤 단어들은 본질적으로 긍정적 혹은 부정적인 관점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따라서 어휘 선택이 사람들의 사고를 움직이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점도 알아두어야 할 것이다. 각자의 판단이 이미 존재하겠지만 (그래서 강한 주관을 갖고 있거나 이미 자신의 의견이 확고한 사람들의 경우에는 크게 영향을 주지 않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많은 사람들에게는 큰 영향을 끼치게 되는 것이다. 사실 요즘 인터넷 공간이 그러하듯, 반대 여론을 펴는 사람이라고 해서 꼭 이해당사자라는 보장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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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적 또는 부정적으로 우리가 어떻게 표현을 하고 싶은지에 따라 같은 말이라도 다르게 표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느껴졌다. 표현만 바꾼채 같은 질문을 했는데 결과가 엄청나게 차이가 났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의 의도가 궁금할때 말의 어투를 바꿔보는 연습을 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그리고 부정적인 표현은 이해당사자가 아닌 사람들까지 어그로를 유발한다는 것도 중요한 사실인 것 같다.
언어가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을 생성한다
이분법적 사고는 ‘흑백논리’라고도 하는데, 어느 한쪽을 부정하면 저절로 다른 한쪽을 긍정하게 되는 논리다. 오로지 두 가지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논리적으로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분법적 사고로 판단하게 된다. 즉 프레임을 형성해 새로운 생각을 방해하는 것이다. 요컨대 상대의 주장을 반박할 때는 상대가 쳐놓은 프레임을 활성화하는 단어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 프레임이 형성된 순간부터는 그 안에서만 생각하게 되기 때문에 그 밖의 생각은 하지 못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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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논리가 다수를 쉽게 통제하기 위해 개념이 생겨났는데, 아직까지도 이런 사고관을 갖으시는 분들을 보면 안타깝다. 개인의 개성은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 다양성을 존중하고 세분화를 인정하는 것이 시급하지만 이분법적인 사고는 이것을 막는다. 그리고 그런 이분법적인 질문을 받았을때 곤경에 빠지지 않는 법을 저자는 제시한다. 역시 요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겠다.
사고를 구속한다
선입견들 가운데 너무나 기반이 확고한 나머지 여간해서는 변하지 않는 관념을 고정관념이라 한다. 우리는 어떤 것을 생각할 때 이미 그에 대해 사전에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을 통해 사고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면 신념은 왜, 어떻게 생겨났을까? 신념은 진화론적 관점에서 어떤 이점이 있기에 인간에게 형성되었을까? 그것은 아마 빠른 판단 및 결정에 도움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신념이 있음으로 해서 매 결정의 순간마다 일일이 처음부터 다시 숙고할 필요가 없이 신속한 판단을 내릴 수 있고, 또 그렇게 함으로써 심리적으로도 편안함을 유지할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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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들이 경험이 되고 우리는 익숙한 경험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려고 한다. 그렇게 생겨난 신념과 고정관념은 저자의 말처럼 빠른 판단과 결정을 도와주지만 가장 나은 훌륭한 판단과 결정을 하게 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러므로 일단 많은 시도로 경험을 충분히 축적하는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한장 밖에 패가 없으면 무엇을 낼지 고민할 필요가 없어 빠르지만 너무 리스크가 큰 것이 아닌가?
자존심이 이성적인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믿음과 배치되는 정보나 지식을 새로 마주했을 때 우리는 심리적으로 불편한 감정을 겪게 되는데, 이를 심리학에서 ‘인지부조화’라 한다. 여러 정보 중 자기가 믿고 싶은 정보만 선택하려는 이 같은 경향을 ‘확증편향’이라 하는데, 원래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신념을 취하는 것이 새롭게 주어진 것을 조사하고 확인하는 것보다 더욱 편하고 쉽기 때문이다. 인지부조화가 와도 신념을 버리지 않는 데에는 확증편향 외에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그것은 자존심이다. 남의 압력에 의해 그것을 버리게 되면 수치심이 들어서 버리지 못하는 존재가 된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사회가 추구해야 하는 가치를 돈이나 이권 같은 경제적 이익보다 훨씬 더 중요하게 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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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을 위해 인간은 낯선 것에 불편함을 느끼게 되었지만 세상이 너무 급속도로 발달된 탓에 정보화 시대에는 본능이 아직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다. 더 정확하고 세부적인 정보를 알려면 많이 접해야하는데 본능은 그걸 반대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너무 본능의 불편한 소리에 귀기울일 필요가 없을 것 같다. 그리고 "너가 맞아? 내가 맞아?"와 같이 생각 하나에 소모적인 자존심 다툼밖에 되지 않으니 내가 옳은 정보를 갖게 되는 것이 더 중요해질 수 있도록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